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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8주 후 줄거리, 캐릭터와 분위기, 개인적인 감상

by 라파닛시 2025. 11. 26.

영화 28주 후 줄거리

줄거리: 격리된 영국에서 다시 바다를 건너다

이야기는 2편(28주 후)에서 한참 더 시간이 지난 뒤, 아예 세대가 통째로 바뀐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분노 바이러스는 유럽 대륙에서는 진정됐지만, 영국은 여전히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격리 구역인 상태입니다.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만든 작은 공동체가 린디스판이라는 섬에 있고, 주인공 가족도 그 안에서 근근이 살아갑니다. 아버지 제이미는 정신, 신체적으로 병을 앓고 있는 엄마 아일라, 그리고 호기심 많고 살짝 반항기 있는 열두 살 아들 스파이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좁은 집에서 몸 부딪치며 투닥대는 이 셋의 모습은, 배경만 다를 뿐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가족같이 느껴져 더 불안해 보입니다. 
이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약입니다. 아일라의 상태를 정말 치료하려면 육지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바다 건너 영국 본토는 여전히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당연히 가면 안 되는 곳이죠.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모한 선택이라도 해보고 싶어 바다를 건널 결심을 하게 되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말리다가 결국 같이 움직이게 됩니다. 둘이 바다를 건너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면 톤은 축축한 기운이 도는 회색인데, 그 안에서 이 부자만이 묘하게 따뜻해 보입니다. 물론, 좀비 영화를 좀 본 사람이라면 이런 장면이 오래 갈 리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지만요. 
육지에 발을 디딘 뒤부터 영화는 속도를 한껏 끌어올립니다. 텅 비어 버린 마을, 망가진 시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 소리, 그리고 이전 시리즈보다 더 변종에 가까운 감염자들. 이번 편의 감염체는 단순히 빠르기만 한 괴물이 아니라, 뭔가 더 예측 불가능하고 집요한 존재처럼 느껴지게 연출돼 있습니다. 설정상 돌연변이에 가까운 새로운 양상의 감염도 등장하면서, 공포는 점점 바이러스 그 자체보다 그 상황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는 인간들 쪽으로 이동합니다.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상투적인 문장을 다시 한 번 밟고 지나가는데도, 이상하게 그게 또 잘 먹힙니다. 

캐릭터와 분위기

캐릭터와 분위기: 세계의 끝,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아이

이번 편의 중심에는 어린 남자 아이인 스파이크가 있습니다.시리즈가 처음 시작됐을 때 주인공이었던 세대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그 이후에 태어나서 원래부터 폐허였던 세계만 알고 자란 세대의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아이의 시점에서 재난 이후의 영국을 보는 게 묘하게 낭만적이면서도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잠깐 멈추고, 예전 2차 세계대전 이후 작고 좁은 마을에 뭉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 사진 속 화면 모습과 영화의 장면이 겹치니까, 그냥 좀비 영화가 아니라 뉴스 아카이브의 한 장면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제이미와 엄마 아일라는 단순히 배경 처리되는 어른 캐릭터가 아닙니다. 제이미는 가족을 지키고 싶지만, 끝없는 절망 속에서 조금씩 일상에 찌들어가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아일라는 가끔 기억이 끊기고 몸도 약해서, 예전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 길을 잃고 헤매는 불안정한 느낌이 듭니다. 이 불안정함은 단지 병든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암으로 인해 반복되는 신체적 고통과 불안감이 남긴 트라우마처럼 느껴집니다. 영화 속에서 아일라의 불안정한 모습이 보일 때마다 어쩐지 현실과 맞닿아 있는 느낌에 괜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섬 공동체 바깥에서 만나는 민간인들, 그리고 생존자 집단은 이 영화의 또 다른 괴물처럼 느껴집니다. 감염자들보다 더 안전한 존재가 맞는지 계속 의심하며 이 영화를 보는 게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포인트입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차라리 좀비들이 덜 위선적으로 느껴질 정도라 씁쓸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

개인적인 감상: 더 커진 세계 속에서 더 작아진 인간들

[28년 후]는 전편들에 비해 확실히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공포 연출만 놓고 보면 호불호가 좀 갈릴 것 같습니다. 1편 특유의 거칠고 즉흥적인 영상미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이번 편이 조금 더 매끈하고 계산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대신 그만큼 정서적인 파고가 높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좀비보다 인물들 결정에 더 긴장하면서 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 선택하면 진짜 끝인데…‘ 하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합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고 극 중 인물들은 대부분은 불안한 길로 빠져듭니다. 어쩌면 이 또한 인간의 모습임을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사회, 정치적인 비유를 욕심껏 끌어오다 보니, 중반 이후에는 메시지가 조금 과잉처럼 느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팬데믹을 겪은 세계, 고립과 국수주의 같은 키워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사들이 반복돼서 “아, 살짝 지루하네…“ 싶은 지점도 분명 있습니다. 좀비물에 아주 직접적인 현실 정치 얹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라면 살짝 피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이제 와서 3편을 왜 찍은 거지? 싶은 의문에 꽤 성실하게 대답하는 속편이라고 느꼈습니다. 단순히 향수 팔이용으로 과거의 공포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20년 동안 우리가 실제로 겪어 버린 세계의 변화를 좀비 서사 위에 다시 얹어 본 느낌입니다.영화 다 보고 나서 괜히 집 앞 편의점 가는 길에 사람들 얼굴을 한 번씩 더 보게 되었습니다. 마스크는 다 벗었지만, 어딘가 또 다른 바이러스 뉴스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감각은 여전히 안 사라졌다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말이죠.

정리하자면, [28년 후]는 제대로 무서운 좀비 영화라기보단, 좀비라는 껍데기를 쓴 현재형 재난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피 튀기는 장면을 원해서 보기엔 정서적으로 꽤 무겁고, 그렇다고 아주 예술 영화처럼 난해한 것도 아닙니다. 딱 그 사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느낌이죠. 그런 영화가 요즘 내 기분과 묘하게 잘 맞아 떨어져서, 보고 나서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겪어 온 것들을 한 번쯤 다른 각도에서 되새겨 보고 싶다면, 꽤 추천할 만한 후속편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