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정유미·이선균이 주연을 맡은 2023년 한국 심리 스릴러입니다.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면서 일찌감치 해외 평단의 관심을 받았고, 개봉 후에는 ‘부부 서사와 호러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행복한 신혼집 침대 위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거창한 세계관보다 아주 사소한 이상 징후 하나로 모든 걸 무너뜨립니다. 그건 바로 남편의 잠꼬대 때문입니다.
영화<잠> 줄거리
줄거리 – “누가 들어왔어” 그날 이후
배우 현수와 임신한 아내 수진은 반지하지만 꽤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는 신혼부부입니다. 어느 날 밤, 옆에서 자던 현수가 갑자기 “누가 들어왔어”라고 중얼거리며 낯선 행동을 보입니다. 처음엔 피곤해서 잠꼬대를 하나 보다 넘기지만, 이후 현수는 잠들기만 하면 냉장고 음식을 꺼내 먹거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등 점점 이상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문제는 아침에 전혀 기억을 못 한다는 것. 수진은 혹시 남편이 자신이나 곧 태어날 아이에게 위해를 가할까 봐 점점 잠을 포기하게 되고, 둘의 관계는 서서히 불안정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부부는 수면클리닉을 찾아가 정밀 검사를 받지만, 원인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의사와 상담사는 각각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원인을 말하지만, 무당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수진의 눈에는 점점 귀신이 붙은 게 아닐까라는 공포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연출과 분위기
연출과 분위기 – 코미디 직전에서 멈춘 불안
이 영화가 재미있는 지점은, 언제든 호러 코미디로 미끄러질 수 있는 상황을 끝까지 진지하게 밀어붙인다는 겁니다. 남편이 멍한 얼굴로 달걀 껍데기까지 씹어 먹는 장면, 밤마다 반복되는 수면 중 이상 행동은 웃기려고만 보면 충분히 웃길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그런데 유재선 감독은 카메라와 사운드를 최대한 절제해서, 그 상황을 지켜보는 수진의 얼굴에 더 오래 머뭅니다. 그래서 관객도 같이 피로해지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인터넷 후기 중에 “보는 내가 같이 잠을 못 자는 기분”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실제로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눈이 뻑뻑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공간도 거의 집과 병원, 점집 정도로 제한돼 있어, 탈출구가 없는 악몽에 갇힌 느낌이 더 강해집니다. 해외 리뷰들에서도 이 작품을 ‘언제 코미디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끝까지 날 선 공포로 유지한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연기와 테마 – 사랑과 공포 사이에 선 아내
〈잠〉의 중심은 사실 현수가 아니라 수진에 가깝습니다. 로튼토마토에서도 이 작품을 ‘잠꼬대를 하는 한 사람과, 그 옆에서 무너져가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정의했는데, 정유미는 그 두려움과 집착의 경계를 아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남편을 믿고 싶지만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수진의 선택은 점점 과격해집니다. 관객은 어느 순간 “수진의 피해망상이 아닐까?” 하며 의심하다가도, 밤마다 찍힌 영상과 이상한 흔적들을 보고 나면 다시 수진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믿음이 공포와 만나면 어떤 얼굴을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야 할까. 그 덕분에 이 작품이 단순 귀신 영화가 아니라 결혼과 동거,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정유미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이런 복잡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끌어낸 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가와 개인적인 여운
평가와 개인적인 여운 – 잠깐 눈 감는 게 제일 무서운 영화
해외 평단에서는 90%가 넘는 높은 호평 지수를 기록했고, 국내에서도 ‘오랜만에 탄탄하게 조여오는 호러’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칸 비평가 주간에서부터 여러 장르 영화제를 거치며 입소문을 탔고, 장르 팬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비교적 폭넓게 먹힌 작품입니다. 러닝타임도 100분이 안 돼 지루할 틈 없이 쭉 밀어붙이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보고 나온 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듣는데 괜히 한 번 쳐다보게 됐습니다. 영화 후반부 해석 여지가 남는 결말에 대한 의견은 갈리지만, 잠이 곧 공포의 통로가 되어 버리는 그 마지막 이미지만큼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피가 튀기거나 괴물이 튀어나오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행위인 ‘잠’을 공포의 매개로 쓴 점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보다, 같이 자는 사람이 있는 관객에게 더 오싹하게 다가갈지도 모르겠습니다.